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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모임/통독요약

[오늘의 말씀] 로마서 11-14장



11장
비록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모두 포기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두 가지 증거를 제시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과 구약 성경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아합 왕은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며 탄압을 자행했고, 엘리야는 이제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탄원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7천명을 남겨 놓으셨고, 이것이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은 증거였습니다(2~4절). 그러나 바울은 이보다 앞서 또 다른 확실한 증거를 제시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이스라엘인,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 베냐민 지파라는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자신도 유대인임을 분명히 했습니다(1절). 심지어 바울은 과거에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옥에 가두는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자를 구원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행위가 아닌 은혜로 택하심을 입었기 때문입니다(5절).

12장
바울은 로마서 11장까지 친히 아들을 제물 삼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해 설명하고 선포했습니다. 12장부터는 그 자비하심을 입은 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면서 그 대원칙을 선언하는데, 바로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를 명령조로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근거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했다면 단순히 자기 자신의 소유를 드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 사람이라면 이 세대, 곧 타락한 세상의 가치관을 따를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가 따라야 합니다. 이 변화는 겉모습의 변화가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완전한 변화이며, 이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13장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에 있어서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난 침이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은 평생 노력해도 완전히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빚과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는데, 계속적인 사랑의 빚 외에는 어떠한 빚도 미해결인 채로 남겨 두지 말라고 권합니다. 또한 사랑의 빚을 진 자로서 이웃들을 사랑하라고 명합니다. 사실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은 대개 가까운 곳에 살거나 여러 일 때문에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웃 사랑하기를 사명으로 여기고, 무엇보다 그 이웃의 결점에 관계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이기 때문입니다(요13:34).

14장
바울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썼다고 고백합니다. 우선 바울은 “만물은 다 깨끗하다”(20절)는 주장에서 표현하는 복음의 핵심에 동의합니다. 이 복음의 핵심을 아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기와 음료를 먹고 마시는 면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행동으로 믿음이 약한 형제에게 거리낌과 의심과 정죄에 이르게 하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시장에서 팔던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거나 포도주를 마신다고 해서 믿음에 해가 되지는 않지만, 유대교 배경의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이를 보고 거리끼게 되고 정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행동 때문에 교회 안팎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 자체가 방해를 받는다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